역사적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모국인 네덜란드는 전체 국토면적의 25%가 바다보다 낮고 방파제, 방조제로 물을 막지 않을 경우 전체 국토면적의 60%가 물에 잠기는 열악한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네덜란드는 알프스 북쪽에서 최초로 산업을 일으켜 부를 축적하였고 대항해시대 이후 세계를 휘젓고 다니며 무역으로 많은 돈을 벌어 유대인, 스코틀랜드인과 함께 세계 3대 장사꾼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특히 오늘날에도 국민소득의 절반 정도를 수출을 통해 벌어들이는 개방형 국가로 알려져 있으며 법과 권력에 앞서 시민 한 개인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강조하여 다른 국가들이 터부시하고 있는 마약복용 등의 민감한 사안을 허용할 정도로 철저한 개인 책임에 기초한 자유를 표방하고 있는 것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회·역사적 배경인지는 몰라도 네덜란드의 화폐를 보면 자유분방함을 느끼게 된다.

유로화폐의 도입 직전까지 유통된 네덜란드의 지폐(굴덴, Gulden)는 10굴덴, 25굴덴, 50굴덴, 250굴덴, 1,000굴덴의 5가지 이었다. 이들 지폐는 OECD 가입국중 유일하게 지폐에 일체 인물초상을 도안으로 사용하지 않는 대신 꽃과 등대 등을 소재로 한 기하학적 도안을 사용하였다.

세계의 각종 홍보물이 네덜란드를 ‘인간의 영혼을 색채로 표현했다는 반 고흐의 나라’, ‘풍차의 나라’, ‘튜울립의 나라’라고 소개할 정도면 은행권중 어느 한 액면의 도안에는 반 고호의 인물초상이나 적어도 추상화되지 않은 풍차 혹은 튜울립의 모습이 있을 법한데 전 권종에 기하학적 도안을 사용한 것은 매우 의외이다.

그리고 색상에 있어서도 잘 바래지 않고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점에서 각국 중앙은행이 전통적으로 은행권에 사용하고 있는 녹색이나 갈색 계열에서 탈피하여 청색, 적색, 노랑 등 원색에 가까운 밝고 화려한 색상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50굴덴에는 반 고호가 그린「열 네송이 해바라기」와 ‘꽃의 나라’를 연상케 하는 해바라기 꽃이 있어 반 고흐의 자취와 네덜란드의 분명한 색채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