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이야기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등록일
2018.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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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화폐이야기 | 은행권 이야기 -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丙’십원권, 1946.5.6 발행)과 (무궁화 꽃이 핀 ‘丁’백원권, 1946.7.1 발행) 사진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다. 술래가 된 아이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사이에 나머지 아이들이 한발한발 술래에게 다가 가는 친숙한 모습이 우리들 가슴속에 있듯 무궁화는 늘 우리들 곁에 있어 왔다. 1907년 윤치호 선생은 애국가 후렴에 무궁화를 썼으며 1925년 10월 25일 동아일보는 ‘조선 국화 무궁화의 내력’이라는 글을 통해 무궁화에 담긴 우리의 정서를 밝힌 바 있다. 또한 도산 안창호 선생은 무궁화를 국화(國花)로 주창한 바 있으며 남궁 억 선생은 ‘무궁화 보급운동’ 등으로 전국민이 무궁화를 국화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온갖 힘을 쏟았다.


하지만 우리의 국화인 무궁화가 화폐의 도안으로 채택되어 우리의 돈임을 강하게 심어준 것은 1946년 7월 1일부터이다. 이 때야 비로소 우리나라의 은행권(지폐)에 무궁화 꽃이 피게 되어 조폐의 자주권이 우리 대한민국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제는 국권침탈이후 1년만인 1911년 조선은행법의 공포를 시작으로 우리의 화폐발행 및 조폐권을 빼앗아 해방전까지 20종의 조선은행권을 만들었다. 이때 만들어진 조선은행권의 대부분은 앞면도안의 주소재가 수노인상(壽老人像)이나 일본정부의 휘장인 오동문장(梧桐文章)을 보조 도안소재로 사용함에 따라 일제의 조폐권 침탈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게 하였다. 한편 1945년 해방후에도 군정법령에 의해 조선은행법의 존속과 더불어 조선은행권이 그대로 유통됨에 따라 인쇄처가 종전 일본 내각인쇄국에서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로 바뀌었을 뿐 1945년 8월 15일 ‘乙’백원권, 1946년 5월 6일 ‘丙’ 십원권에 이르기까지 종래 일본정부 휘장인 오동문장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1946년 7월 1일 종래 일본정부휘장의 오동문장을 무궁화 도안으로 바꾼 ‘丁’백원권은 비록 작은 변화이지만 우리 나라 화폐사에 일본색을 없애고 조폐권의 국가적 자주성을 회복하였다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해방이후의 몇몇 한국은행권, 현용 1원화, 1998년 8월 14일 발행된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주화 등에 이르기까지 계속 우리 화폐 속에 무궁화를 피게 한 전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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