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를 인상하면 공급병목이 해소되고 원자재가격이 떨어집니까?” 주변 지인들한테 많이 듣는 질문이다. 원유, 곡물 등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에 금리인상으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느냐는 의구심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과거에 비슷한 고민을 했던 Smaghi(2005년 당시 ECB 집행이사)의 연설문[1]을 참고해서 설명해 보려고 한다.
본격적인 설명에 앞서 최근의 높은 물가 오름세에는 공급요인뿐 아니라 수요측 요인도 함께 영향[2]을 미치고 있으며 한국은행을 포함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큰 폭의 정책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는 데는 이러한 수요압력 완화를 우선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 이하에서는 ‘공급측 요인으로부터 촉발된 인플레이션에 통화정책이 어떤 측면에서 소용이 있는가’하는 의문을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먼저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국제유가가 한 차례 급등해서 그 수준에서 머문다고 가정해보자.[3] 그러면 일차적으로 물가상승률은 높아지고 총소득(≒총생산 또는 고용)은 줄어든다(Y0→Y1, 그림1. 유가충격)
그림 1. 총수요(AD)-총공급(AS) 곡선: 유가충격
자료: 한국은행
이때 줄어든 소득을 제자리로 되돌리기 위해 중앙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총수요 확대를 도모하면 어떻게 될까? 이것이 사실상 1970년대 오일쇼크에 대응해서 대부분의 중앙은행이 시행했던 정책이다. 유가상승에 따른 소득감소를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할수록 유가상승이 여타 품목의 가격상승으로 전이되는 2차 파급효과(second-round effects)의 속도가 빨라진다. 가계, 기업 등 경제주체의 기대인플레이션도 가파르게 상승한다. 이는 실질임금 감소로 이어져 노동공급도 감소(AS′→AS″→AS‴)하고 결국 총소득이 줄고 그에 따라 금리인하 효과가 무력화된다. 그럼에도 중앙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을 고수하면 소득증대 없이 인플레이션만 계속 높아지게 된다. 나중에 인플레이션을 잡으려면 금리를 큰 폭으로 올려야 하고 그러면 총소득이 대폭 줄어들면서 경기침체가 불가피해진다. 1970년대 후반 미 연준의장 Paul Volcker의 긴축정책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Y0→Y2, 그림2. 1970년대 정책대응).
그림 2. 총수요(AD)-총공급(AS) 곡선: 1970년대 정책대응
주: 1) 기대인플레이션(Pe)이 높아지면 기대실질임금이 하락하여 노동공급이 줄어들면서 총공급(AS)이 감소(좌측 이동)
2) 금리가 인하(인상)되면 투자‧소비가 증가(감소)하여 총수요(AD)곡선이 우측(좌측) 이동
자료: 한국은행
(사례 Ⅰ: 새로운 균형에서 안정)
이때 만약 모든 경제주체들이 국제유가 급등을 산유국에 지불하는 세금(tax)으로 간주하면 어떻게 될까? 기업은 비용상승에도 불구하고 제품가격 인상 대신 생산성 제고로 대응하고, 가계는 물가상승으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분을 받아들이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러면 높아진 물가와 낮아진 총소득 수준에서 새로운 균형이 형성된다(P1 및 Y1, 그림1. 유가충격). 임금·물가 간 상호작용(wage-price spiral), 즉 2차 파급효과는 발생하지 않는다. 소비자물가는 에너지 가격을 중심으로 높아지지만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는 변동이 없다. 그리고 1년 후에는 전년동기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국제유가 급등 이전으로 되돌아간다. 물론 국제유가 급등에 따른 일시적 물가상승과 소득감소가 경제에 결코 좋은 일은 아니지만, 경제주체들은 새로운 균형에서 다시 생산과 총소득을 증대시켜 나갈 것이다.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기대인플레이션도 안정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례 Ⅱ: 인플레이션 발생과 중앙은행의 늦은 대응)
하지만 공급충격이 장기화되면서 제품가격 인상과 임금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적인 현상이 된다. 이때 중앙은행이 이러한 물가·임금·기대 간 상호작용, 즉, 공급충격의 2차 효과에 대한 대응에 실기한다면 인플레이션이 가속되면서 향후 물가 안정을 위해 더 큰 폭의 금리인상이 불가피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경기 둔화 폭이 커지면서 총소득도 처음 국제유가 급등에 의해 줄어든 수준보다 크게 낮아질 수 있다(Y0→Y4, 그림3. 늦은 긴축대응).
그림 3. 총수요(AD)-총공급(AS) 곡선: 늦은 긴축대응
자료: 한국은행
(사례 Ⅲ: 인플레이션 발생과 중앙은행의 선제적 대응)
반면 중앙은행이 2차 효과에 대응하여 선제적으로 금리를 인상하고 기대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 경우에 총소득 측면에서는 여전히 사례Ⅰ보다 줄어들겠지만 그 정도는 사례Ⅱ에 비해 상당히 축소될 것이다(Y0→Y6, 그림4. 선제적 대응). 더욱이 물가가 조기에 안정되는 만큼 경제가 이후 다시 빠르게 성장 궤도로 재진입할 수 있다.
그림 4. 총수요(AD)-총공급(AS) 곡선: 선제적 대응
자료: 한국은행
사례Ⅰ~Ⅲ을 종합해보면, 우선 공급충격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경제 전체가 ‘구성의 오류’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가상승이 임금상승으로 연결되고 다시 가격상승로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경제주체가 개별적으로는 합리적으로 결정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고물가 상황이 고착되면서 모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례Ⅰ과 같이 경제주체들이 공급충격을 최대한 흡수하는 것이 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공급충격이 장기화된다면 어느 정도의 2차 파급효과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이에 대해 신속히 대응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안정시켜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 단기적 손실이 있더라도 장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다. 이때 여타 경제정책은 공급제약 완화와 서민물가 안정을 도모하고, 인플레이션 및 금리상승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는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적절한 대처방안일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높은 상황에서는 그 피해가 저소득 취약계층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다만,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이 글은 공급충격과 중앙은행의 정책대응에 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 가정들을 통해 현실 상황을 단순화했다. 또한 실제 통화정책 운용은 수요측 물가 압력, 성장, 금융안정 측면의 위험, 주요국 통화정책 영향에 따른 환율 및 자본유출입 움직임 등 다양한 요인들도 함께 고려하여 이뤄진다는 점도 밝혀둔다.
[1] 「Inflation, expectations and current challenges to monetary policy」(Lorenzo Bini Smaghi, 2005)
[2] 수요 압력을 나타내는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상승률이 4%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높아졌으며, 물가상승률이 5%를 상회하는 품목 비중이 50%에 이르는 등 물가 상승의 확산 정도도 광범위한 모습이다.
[3] 일반적으로 국제유가 상승과 같은 공급측 물가 충격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유가 상승에 따라 원유 생산이 늘어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수요가 둔화되면서 자연스럽게 국제유가가 하락한다. 이러한 일시적인 공급 충격에는 중앙은행도 대응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제유가 상승 추세가 2년 넘게 지속되는 등 일반적인 패턴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