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발전과 한국은행

총재 기념사

금융통화위원회

최초의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현재의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

한국은행 본관 건물

화폐박물관으로 사용되는 舊본관
1987년 신축한 新본관

창립기념일 행사

한국전쟁 피난 당시 창립 제2주년 기념식
2019년 창립 제69주년 기념식

  1. 1950~1961

    한국은행의 창립

    1950. 07한국은행권 최초 발행

    1953. 02화폐개혁(100원→1환)

    1959. 10주화 최초 발행

  2. 1962~1979

    한국경제의 도약

    1964. 09금리현실화조치 단행

    1969. 11통화관리방식으로 ‘국내여신
    직접규제방식’ 채택 (1970.1월 시행)

    1978. 08‘민간신용 한도관리제’ 제도화
    (1977년 창구지도방식으로 운용)

  3. 1980~1996

    금융자율화와 세계화

    1985. 06산업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한국은행 대출제도 도입
    (7월 시행)

    1991. 08금리자유화 추진계획 발표

    1994. 12한은금융망 가동

  4. 1997~2011

    금융위기 극복과
    물가안정목표제 운용

    1997~99금융기관 구조조정 지원 등을 위한
    유동성 지원

    2001. 08IMF 차입금 상환 완료

    2008. 03정책금리 변경 및 통화신용정책
    수단 정비

  5. 2012~현재

    글로벌 불확실성과
    경제성장 및 금융안정의 조화

    2014. 12원·위안화 직거래 시장 개장

    2018. 11이주열 총재 BIS이사회
    이사직 수임

    2020. 03한·미 통화스왑계약 체결

프롤로그

70년간 이어온 한국경제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한국은행

한국은행은 1950년 설립된 이래 지난 70년간 시대가 요구하는
중앙은행의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여 왔습니다.

50년대
전란극복과 통화·금융체계 정비
60~70년대
고도성장과 산업구조 고도화 지원
80~90년대
물가안정기반 구축과 금융자율화
2000년대 이후
위기 극복, 경제성장 및 금융안정의 조화

GDP/1인당 GNI
(1953 2019)

GDP

13억 달러

1조 6,463억 달러
(세계 10위)

1인당 GNI

67달러

32,115달러

산업구조

1953년

기타
4%

제조업
8%

농림어업
49%

서비스업
40%

2019년

기타
8%

제조업
28%

농림어업
2%

서비스업
62%

한국은행의 창립

1950~1961 대한민국 중앙은행 탄생
전후 복구와 성장기반 마련

광복 이후 경제적 혼란을 극복하고 자주적인 통화∙금융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은 대한민국 중앙은행으로서 역사적인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나 창립 직후 전쟁이 발발함에 따라 전란 중에는 경제의 원활한 운용을 뒷받침하고 인플레이션을 수습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휴전 이후에는 전후 복구와 경제부흥에 적극 나섰으며, 우리 경제가 점차 안정을 되찾음에 따라 통화∙금융체계 전반을 정비하여 고도성장에 필요한 기반을 마련하였습니다. 광복 이전 한국은행 전경 1953년 긴급통화조치시 화폐교환 창구(1953.2)

한국경제의 도약

1962~1979 한국경제 도약에 필요한 투자자금 공급
금융의 효율성 제고

정부의 성장우선정책에 발맞추어 무역금융, 상업어음 재할인 등 유동성 공급수단을 활용하여 고도성장, 산업구조의 고도화 및 수출증대에 이바지할 수 있는 부문에 자금이 원활히 공급되도록 지원하였습니다.

한편 고도성장기를 맞아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대되고 국제수지 개선 등에 따른 통화량 급증으로 유동성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독자적인 통화량 목표를 설정하여 운용하였습니다. 수출 100억 달러 달성(1977.12) 1962년 긴급통화조치 단행 후 화폐교환 풍경(1962.6)

금융자율화와 세계화

1980~1996 안정성장 기반 구축, 금융자율화 추진
한국경제의 세계화 지원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이 성장우선에서 안정우선으로 전환한 데 부응하여 한국은행은 통화신용정책을 긴축기조로 운영하여 우리 경제가 안정기반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아울러 고비용-저효율 구조와 같은 고도성장에 따른 후유증 등으로 어려움에 처한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총액한도대출제도를 도입하고 한은금융망을 구축하는 등 정책시스템을 정비하는 한편 금융자율화와 금융국제화를 적극 추진해 나갔습니다. 제40회 IMF/IBRD 서울연차총회(1985.10) SWIFT 시스템 개통식(1992.3)

금융위기 극복과
물가안정목표제 운용

1997~2011 위기 극복을 위한 역량 집중
물가안정목표제 도입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사태 및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여 금리정책을 유연하게 운용하고 유동성 공급을 확대하는 등 적극적인 위기수습 조치를 시행하였습니다.

또한 1998년 한국은행법 개정을 계기로 금융통화위원회의 기능과 정책 중립성을 강화하고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하여 금리 중심의 시장친화적인 통화신용정책이 뿌리내리도록 하였습니다. 제6차 개정「한국은행법」이후 최초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장면(1998.4) IMF 차입금 최종 상환 서명(2001.8)

글로벌 불확실성과
경제성장 및 금융안정의 조화

2012~현재 통화신용정책의 목적과 책임 확대
글로벌 불확실성 대응체제 구축

한국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성장세 둔화에 대응하여 완화적 정책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새롭게 부여된 금융안정 책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대외 불확실성, 최근 코로나19 사태 등에 대응하여 중앙은행 간 통화스왑을 체결하고 한시적으로 원화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는 등 경제·금융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금융안정회의 기자설명회(2017.3) 거시경제정책과 구조개혁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2016 BOK 국제컨퍼런스(2016.5)

혼돈시대의 중앙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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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용 화폐 도안의 변천사와 숨은 이야기

경제성장으로 거래 단위가 커지면서 고액권의 발행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2009년 오만원권이 새로 발행되었다. 오만원권의 가장 큰 특징은 도안 인물을 최초로 여성인 신사임당으로 하였으며, 뒷면 도안 소재인 월매도와 풍죽도를 세로방향으로 디자인했다는 점이다.

최초의 가 만원권을 발행할 당시에는 전해지는 초상화가 없어 덕수궁에 있는 조각상을 모델로 세종대왕의 초상화를 디자인하였다. 이후 이씨 왕가가 수염이 적다는 고증자료를 받아들여 수염이 줄어든 표준영정을 초상으로 사용하여 나~바 만원권을 발행하였다.

1972년 오천원권에 사용된 율곡 이이의 초상은 사직공원에 있던 동상을 근거로 디자인된 것으로, 영국 토마스 테라루(Thomas De La Rue)사의 율곡 초상 재현과정에서 콧날이 서구적으로 높게 표현되었다. 현 오천원권 초상은 강릉 오죽헌에 봉안된 복건 모습의 표준영정을 정자관 모습의 반측면상으로 제작한 것을 사용하였다.

경제활동 및 금융거래의 효율성 제고를 위해 고액권 발행이 추진됨에 따라 천원권이 발행되었다. 천원권 앞면 이황의 초상은 1974년에 제작된 표준영정을 사용하였다. 뒷면 도안으로 가·나 천원권에는 도산서원을 사용하였으나 다 천원권부터는 <계상정거도>를 사용해오고 있다.

자동판매기 등 주화 사용 기기의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주화 수요가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훼손비율이 높았던 오백원 은행권을 대체하기 위해 1982년 오백원 주화가 발행되었다. 도안으로는 학이 사용되었으며 이미 유통되고 있던 백원 주화보다 크게 제작하였다.

1962년 긴급통화조치에 의해 환(圜)화의 유통과 거래를 금지하고 호칭단위를 10분의 1로 절하한 원화를 법정통화로 지정함에 따라 독립문이 도안된 백원권이 발행되었다. 1970년 11월에 백원권이 백원화로 대체되면서 이순신 장군이 도안으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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